사)한국청소년육성연

최진아 신세대가수, ‘나비 꽃’ 매력적인 무대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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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8
  • 조회 710
가수 최진아가 지난 20일 오전 11시에 충남 태안만리포해수욕장 59회개장식에 앞서 무대에 올라 매력적인 무대를 꾸며 화제다. 이날 태안 만리포관광협회(권한대행 전완수)는 제59회 만리포해수욕장 개장식을 태안군청과 태안해경 후원으로 119소방대와 함께 가진 뒤 전국의 관광객을 맞이했다. 개장식에 앞선 개장식 축하공연에서 가수 최진아는 트로트 발성을 미묘하게 섞어 소화를 해내 가수 최진아의 실력을 정확히 입증시켰다. 아울러 신세대 트롯가수 최진아가 감찍한 외모와 출중한 실력을 갖춘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진아는 20때부터 코러스 및 김완선씨 피처링에  참여 할 만큼 실력은 검증되어 있었다. 21살 땐 걸 그룹 "걸투스쿨" 보컬로도 참여하며 꾸준히 준비한 가수다. 지난해 1집 앨범 '나비꽃'을 발표하며 트로트에 첫발을 내딛은 최진아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남녀노소 가슴을 설레게 하는 보이스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으며 지난해 '2013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성인가요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곡가 김지환 씨를 만나  1집 앨범 타이틀" 나비꽂"으로 대중 앞에 선 보이고 있다. 최진아 1집 나비 꽃은 총7곡으로 구성되어있는 미니 정규 앨범이다. 펑키, 폴가, 전통발라드, 락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로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고급스러운 멜로디와 진정성 있는 가사 말 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음악으로 성인가요에 도전해 보고 싶은 당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곡 전반부에 흘러나오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실로폰, 현과 코러스, 라인이 이곡의 완성도를 10초안에 느낄 수 있게 하고픈 작곡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한편 가수 최진아는 현재 iTV "최진아의 주크박스"와 "우리가요 한마당"의 명 MC로 활약중이다. MC+가수 최진아-나비꽃+내게로오세요+쿨한여자_스타클럽 Show 한마당 -대전엑스포시민광장 야외특설무대_영상감독 이상웅 -2013.10.22. 00104 http://youtu.be/ixo8Jfk6ODs 가수최진아 행복을 주셔서 감사! 신인 트로트가수 최진아, 강소리 [나비꽃] http://youtu.be/omIBcoAC5QM 140523트로트엑스베스티.혜연과.최진아.김재혁 http://youtu.be/DoKBT6fEhz4 최진아 눈물 국민가수 최진아 많은 사랑 주세요 최진아 제21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신인상movie http://youtu.be/f9slh99nrJg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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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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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

박정희대통령 업적(역사)알리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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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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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TIMs http://kbiz.xpr.kr/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를 최단기20년만에 경제상위국가로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 ●총판.딜러. 봉사위원 모집 ●문의: xmy@naver.com ●박근혜 정부 그분이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국가 정치의 목적에 큰 역할 할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우리나라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에 있는 나라로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BC108년까지 존재했다. 현대 들어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과 소련 군대의 한반도 분할 주둔으로 남북으로 나뉘었고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이후 6·25전쟁 3년 6개월간 인명피해 약450만 명으로 6.25전쟁이 우리민족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8.15해방 이후 외세인 미소에 의한 조국의 분단이 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2세대가 넘는 6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착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했든 그 고통 유치원에 다녔어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떠돌며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었다.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잡초 보다 모질게 살아남아야 했든 폐허로 인력도 자본도 없는 작은 나라는 빨갱이들이 판치는 나라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최단기로 역사상 최강국으로 풍요로운 국가 한강의 기적을 남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사업을 통하여 “하면 된다”는 자긍심과 한민족 5000년 보릿고개를 해소 시켜 오늘날 대한국민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10위권에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하신 위대한 대통령의 정신 국민이라면 누구나 애국정신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조국근대화의 건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는 박정희대통령의 한강의 기적 신화 창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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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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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개통은 박정희 정권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비로소 ‘전국 일일생활권’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 경제적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총연장 대비 공사기간을 따져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연장 20킬로미터였던 본-쾰른 간의 아우토반을 달리게 되었는데, 고속도로의 수송능력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였고,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속도 로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외국에서 빌리고, 도로 건 설 이후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고속도로 이용자에게 거두어들인 통행료로 빌린 돈을 갚기로 했다. 박정희는 “이 공사는 민족의 피와 땀과 의지의 결정이며 민족적인 대 예술작품”이라고 했고, 그의 경 제 브레인이었던 오원철은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다. 구상부터 계획, 감독, 검사를 혼자서 해냈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창시자요 대부이다. 경부고속도로는 역사상 박정희 고속도로로 남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공사는 단순한 건설 공사가 아닌, 군사 작전과 같이 군대식 총력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사였다. 오원철은 “고속도로 건설 동기, 추진 방법, 공사 방식이 모두 군대식 이었다”고 평가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원래 1971년에 개통 예정이었으나, 무려 1년을 앞당겼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에 불과했지만 1979년에는 1,636달러를 기록해 연평균 18퍼센트 증가했고, 수출은 연평균 38퍼센트 증가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웠다. 절대 빈곤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현명한 지도자의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러 한 경제발전에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큰 역할을 했다. 경부고속도로 계획이 발표된 직후 월간 <세대> 1968년 1월호가 각계 인사 100명에게 찬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68%가 무조건 찬성, 27%가 조건부 찬성, 5%가 반대를 표했다. 하지만 야당을 비롯한 운동권 학생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고속도로 계획에 극심한 반대를 했다.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렵고 차도 별로 없는 나라에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니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는 논리였다.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2대 경제권의 중심인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여 경제발전의 첩경이 되도록 하기 위한 이유에서 건설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1967년 초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방대한 구상을 끝내고 몇몇 구간의 노선까지 손수 결정해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처럼 고속도로는 박정희에게 근대화의 상징이자 경제개발의 꿈을 실현시킬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결과, 1968년 12월 21일 우리나라 첫 고속도로인 서울-인천 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1970 년 7월 7일에는 연장 428킬로미터, 4차선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1973년에는 연장 251.8킬로미터, 2차선인 대전-순천 간 호남고속도로와 연장 176.5킬로미터, 2차선인 남해고속도로가 개통 되어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연결하게 되었다. 또한 1975년에는 연장 201킬로미터, 2차선인 수원-강릉 간 영동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수도권과 영동지방을 연결하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후 철도 위주의 수송 구 조가 도로로 바뀌었고, 전국 이 일일 생활권으로 연결되었다. 공업 단지도 전국 방방곡곡에 건설되었고, 산업 발전과 산업 생산성도 높아졌다. 고속도로 건설은 ‘한강의 기 적’이라는 신화 창조에 중요 한 역할을 담당했다. 각하를 더러 독재 독재하는데 그거 하나로 각하를 묻으려 하지마라. 각하가 이루어낸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나라들의 꿈이다. 동으로 미국, 서로 중국, 남으로 일본, 북으로 러시아 세계 최강국들에 둘러 쌓여 한 울타리 안에는 북괴가 호시탐탐 노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야당을 비롯한 운동권 학생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고속도로 계획에 극심한 반대를 무릎 쓰고 할 줄 아는 건 농사 밖에 없는 국민들을 데리고 한반도 역사상 최강국을 건설했다. 하면 된다. “중단하는 자는 성공할 수 없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 세대의 생존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 은 영원하다. 사랑합니다. 그분이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국가정치의 목적에 큰 역할 하도록 새마을운동으로 상생과 소통의 조직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국가경영능력 소유자 박정희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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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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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나올까 말까한 국가경영능력 소유자” 과학기술자 대거 유치하며 기능공 양성 ‘공업대국 건설’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에서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경부선, 댐 공사, 발전소 등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 능학교들을 세워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했다. 국제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은 한국이 독차지했다.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가 됐다. 공장장이 사장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았다. “대학가야 소용없다., 기술을 배워야 대우 받는 다”라는 말이 사회적 유행어가 됐다. 한국의 일자리는 이렇게 해서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물과 한숨의 대명사 ‘보리 고개’라는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세계인들은 뉴딜 정책이 8백만 일자리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해 두고두고 칭송한다. 하 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일자리 만들기는 이보다 훨씬 더 기막히다. 앞이 보이지 않던 그 시대에 어떻게 기능공을 양성해서 일자리를 폭발적으로 만들어 낼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필자 는 지금도 혀를 찰 만큼 감탄하고 있다. 그는 대규모 공단을 지어 기업인들을 입주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기업들에게 외국에서는 이미 사양화돼 가는 수많은 제품들에 대한 기술도 면을 얻어다 주었다. 그러나 공장에는 외국어로 표기된 기술자료 (TDT: Technical Data Package) 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외국에 나가있는 과학기술자를 대거 유치하여 기업을 지도하게 했다. 생활필수품 마저 고갈됐던 당시엔 한동안 물건이 없어서 못 팔 판이었다. 기업은 날로 번창하고 생산 설비는 더욱 팽창했다. 그만큼 일 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당장에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미래에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을 키우는 데에도 착안을 했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안목을 가지고 그는 빠듯한 나라 살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과학 단지를 만들어 냈다. 과학 단지야말 로 미래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핵심적 원동력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그들 곁을 자주 찾았다. 국가경영능력만을 보면 박대통령은 100년에 나올까 말 까한 사람이라는 걸 필자는 믿고 있다. 외국 지도자들은 그의 국가경영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등소평이 박정희를 숭상한 이래 중국은 지금 박정희를 경제선생님으로 모시고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베트남의 도이모이 역시 그의 성장모델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확실한 국가경영 리더십 한국의 누가 뭐래도 박정희는 아시아 10대 인물 중 상석에 속해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늘 확실한 지시를 했다. 그는 국방장관과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청와대에 불러 M-16소총과 81미리 박격 포를 내놓고 “이들과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소니의 초대 회장 이부카는 미국에서 사온 포켓북을 책상에 내놓 고 “바로 요만한 사이즈의 캠코더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확실한 목표를 주는 지도자는 흔치 않다. 그는 언제나 목 표와 청사진을 가지고 국가를 이끌어 갔으며 모든 지시는 구체적으로 했다. 그러나 그의 발등에는 붉은 개미떼들이 집요하 게 붙어있었다,

6.25전쟁이 남긴 인명피해 약20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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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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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역사 이야기 6.25전쟁 전말 한반도가 1945년 8월15일 일본에서 해방된 후 일본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 어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였고 이것이 고착화 되어 남북에 각자의 정부가 들어섰는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김일성을 수장으로 하는 북한 공산군이 남한의 적화 공산화 무력통일을 위해 남북군사분 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말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후 벌어진 가장 규모가 컸던 전쟁이며 남한을 도우기 위해 유엔에서 전투병력으로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이 참전했으며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중공군이 개입을 하여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남한과 유엔군은 압록강 해산진까 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으나 1953년 7월 27일 결국 현재의 휴전선으로 휴전협정을 맺음으로서 전쟁을 휴전합니다.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이라해서 6.25전쟁이라 부르며 이 전쟁의 결과로 1953년 7월 휴전협정때 정해진 군사분계선이 현 재의 휴전선입니다.   원 인 6.25전쟁은 남한과 북한이 사회이념을 가지고 싸운 전쟁입니다 북한은 소련의 사회공산주의를 선택하였고 남한은 미국의 민주자본주의를 선택하였기에 일어난 전쟁으로 6.25는 우리 의 전쟁이지만 사실상 미소냉전에 의한 세계의 새로운 구도에 끼어들어 어떻게 보면 미소의 대리전쟁을 하게 된거나 마 찬가지 입니다. 2차대전으로 남북한을 분할점령한 미국은 공산주의가 퍼지지 않게 하려고 우리나라의 남한을 원조했고, 소련은 공산주 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북한을 지원한 결과로 북한 김일성의 남침야욕과 합쳐 일어난 전쟁입니다.   과 정 1950.6.25 북한군의 남침 1950.6.26 유엔안보리, 북한군 침공중지 결의 1950.8.1 미 제 8군사령관,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명령 1950.8.5 인민군의 8월 공세 시작 1950.8.16 B-29 폭격기, 융단폭격 1950.8.31 ~ 9.8 인민군의 9월 공세 1950.9.15 인천상륙작전 1950.9.28 수도 서울 탄환 1950.10.1 국군, 38도선 돌파 북진 1950.10.25 중공군, 제1차 공세 개시 1950.10.26 국군, 압록강 초산 도달 1950.11.21 미 제10군단, 두만강 혜산진 진입 1951.3.15 국군, 서울 재탈환 및 북진 1951.4.12 맥아더원수 해임, 리지웨이 장군 유엔군사령관 임명 1951.6.23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 휴전회담 제의 1951.7.10 개성에서 휴전회담 개시 1951.10.25 휴전회담장 판문점으로 이동 1951.10.28 군사분계선 설정 합의 1951.12.18 쌍방 포로명단 교환 1953.4.20-26 부상병 포로 교환 1953.6.8 포로 송환문제 타결 1953.6.18 이승만 대통령, 전격적 반공포로 석방 1953.7.27 휴전협정 조인   결과와 이후 경과 전쟁은 3년 6개월간 계속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남한의 인명피해는 민간인 약100만 명을 포함한 약 200만 명이며, 공산진영의 인명피해는 100만 명의 민간인 을 포함하여 약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전쟁기간중 한국은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전쟁이후 현재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휴전선은 고착화 되었고 남북간은 대립과 완화를 반복하는 긴장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나 김대중 대통령의 햇保ㅓ?京캠?금강산과 개성공단을 통한 경제협력등으로 인해 긴장완화와 통일을 위한 발걸음 을 한발짝씩 진행 중입니다.   전쟁의 영향 6.25전쟁이 우리민족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8.15해방이후 외세인 미소에 의한 조국의 분단이 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2 세대가 넘는 6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착화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혈육의 정이 남아있는 이산가족 세대들도 자연의 이치에 의해 이제 사망하여 줄어들고 있기에 민족의 끈끈함이 더 사라 지기 전에 민족의 분단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세대의 숙제일 것입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한 점 흙으로 사라져갔다. 물 따라, 바람 따라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하나씩.. 둘씩.. 모두 다, 잊혀져 갔고, 모두 다, 잊고만 싶었던 세월들.. 그러나, 결코.. 하나도, 잊을 수도 없고, 하나도, 잊어서는 아니 될 우리들의 아픈 상처이자, 슬픈 자화상이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Freedom is not free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8.15박정희대통령 각하 영부인 추모식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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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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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박정희대통령 각하 영부인 추모식 8.15현충원 추모식에 참석할 회윈(일반)님은 아래와 같이 공지 합니다. 장소: 대구역 앞 관광버스 일시: 8윌15일 오전7시 연락: 대구010-2672-6988/ 010-2514-0777 회비: 3만윈(대구)중구 사무국장/김정태 ============= 부산: 8월14일밤11시30분 장소: 부산진지하철역8번 출구(앞)그린고속관광 회비: 5만원 경유: 하행시 옥천 육영수여사님 생가 연락: 부산 010-5789-1133 배인식 회장 ============= 기타지역: xmy@never.com 국민사회복지회(회장)김재호 참석자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박정희대통령정신문화선양회 - 민족중흥회 ▷진정한 애국이란? 마음만 먹으면 권력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과 자기의 자녀들의 풍족을 쌓고 숨길수 있음에도... 다 헤어진 옷을 꿰메 입으시고, 구부러지고 허기진 힘없는 국민들을 아파하신 진정한 대한의 어머니 국모 ...

대통령업적(대전.대구.서울)세미나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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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8
  • 조회 700
박정희 대통령 위대한 업적 세미나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가발전 초석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 업적 알리고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국가 정치의 목적에 큰 역할 하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하고자 합니다. (대전.대구.서울 세미나 끝나고) 총판.딜러. 봉사원 모집"국민복지문화진흥재단"접수: xmy@naver.com SAVE TIMs"출간"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를 최단기20년만에 경제상위국가로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 ==================================== 박정희대통령 각하의 愛國愛族精神과 최 단기 국가발전의 초석의 영웅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의 혁명가로서 민족중흥. 조국근대화.자주국방. 정윤대로의 위업을 남기시고. 근면. 성실. 정직한 ‘박정희 대통령’은 5.16혁명을 통해 집권한 뒤 1963년 민선에 출마, 5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1979년 9대 대통령 재직 시 불의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헌신한 분 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에 있는 나라로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BC108년까지 존재했다. 현대 들어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과 소련 군대의 한반도 분할 주둔으로 남북으로 나뉘었고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이후 6·25전쟁 3년 6개월간 인명피해 약450만 명으로 6.25전쟁이 우리민족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은 8.15해방 이후 외세인 미소에 의한 조국의 분단이 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2세대가 넘는 6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착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했든 그 고통 유치원에 다녔어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떠돌며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었다.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잡초 보다 모질게 살아남아야 했든 폐허로 인력도 자본도 없는 작은 나라는 빨갱이들이 판치는 나라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최단기로 역사상 최강국으로 풍요로운 국가 한강의 기적을 남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사업을 통하여 “하면 된다”는 자긍심과 한민족 5000년 보릿고개를 해소 시켜 오늘날 대한국민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10위권에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하신 위대한 대통령의 정신 국민이라면 누구나 애국정신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조국근대화의 건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국근대화의 건설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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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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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TIMs" http://kbiz.xpr.kr/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를 최단기20년만에 경제상위국가로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 -박근혜 정부 그분이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국가 정치의 목적에 큰 역할 할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총판.딜러. 봉사위원 모집 문의: xmy@naver.com ==================================== 국가발전 초석의 영웅 박정희대통령 위업 알리고 그분이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국가정치의 목적에 큰 역할 하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하기를 공지 합니다. 박정희대통령은 위대한 혁명가로 영웅적 입지는 감히 누구와 비교할 대상이 없다. 평생 살 것처럼 각하는 꿈을 꾸었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았다. 기회주의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지 못한다. 각하를 더러 독재 독재하는데 그거 하나로 각하를 묻으려 하지마라. 각하가 이루어낸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나라들의 꿈이다. 동으로 미국, 서로 중국, 남으로 일본, 북으로 러시아 세계 최강국들에 둘러쌓여 한 울타리 안에는 북괴가 호시탐탐 노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할 줄 아는 건 농사 밖에 없는 국민들을 데리고 한반도 역사상 최강국을 건설했다. 그분이 박정희대통령이다. 이런 경우가 또 있던가? 모래에서 반도체 1개를 만드는 것하고 반도체 1개를 1,000개로 찍어내는 것하고.. 어떤게 더 어려울까? 수익은 후자가 훨씬 더 높을지 모르지만, 각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것도 전쟁의 폐허에서... 싱가포르의 리콴유나 일본의 시게루, 중국의 덩샤오핑 같은 경우는 전국토가 폐허 잿더미가 된 적은 없었다, 또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들도 많았다. 전쟁으로 폐허된 인력도 없고 자본도 없는 완전한 無의 상태에서 출발하여 거대”강국”한국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중단하는 자는 성공할 수 없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 세대의 생존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은 영원하다. 사랑합니다. 그분이 국민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국가정치의 목적에 큰역할 하도록 상생과 소통의 조직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협조와 조언 바라며 참여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초대합니다. 2014년 보문산 야외음악당

  • kbiz
  • 201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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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합니다. 2014년 보문산 야외음악당 대전 보문산ㅡ춤과 음악이 있는 풍경ㅡ사회자 이명순 방송인~ 녹음이 우거질대로 우거진 보문산 야외음악당에서 8/1, 8/8, 8/15 금요일 저녁 8시 보문산 산자락 산바람이 선선해지는 시간~ 아름답고 품격높은 연주로 힐링하러 오세요.